아산병원 처음 들어간 날(응급실)
2011년 8월 16일

가련하게도 내 몸 이렇게 되도록 돌보지 않은 인간이 또 있나할 정도로 병원에 실려가서야 생각한다.
긴 시간동안 수 없이 살아온 나날들 속에서 많은 증상들이 있었는데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살아온 내 자신을 자책한다. 이미 늦었는지도 모르는데...
내 육신에게 미안하기만 하다.
잠잘려고 누웠다가도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가면서 아직이라고...
결과도 안 나왔는데 하면서도 죽음에 대한 생각이 사로잡히면서
나 자신도 모르게 주위를 정리한다. 암으로 돌아가신 친정엄마처럼.

앞으로 치료하는 동안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시간들이 얼마일까?
긴 세월을 산다해도 그 많은 치료비용을 어찌 감당할까?
어차피 살지 못할거라면 깨끗하게 조금 살다가 아이들 힘들게 안하고 있다가면 좋으련만...
사람의 목숨이란 인력으로 안되는 것을...
내 목숨이 길다면 더 살 것이고 짧으면 빨리 죽는 것이겠지만 모든 것이 운명인 것을...

아산병원 응급실 처음 들어가던 날. 그 많은 환자들 속에서 침대 아닌 의자에서 보낸 날.

골수 이형성 증후군일지도...
2011년 8월 18일

수 없이 피를 뽑아간다.
수액이 연달아 내 몸 속으로 들어간다.
팔뚝 여기 저기 주사 바늘 자국이 남는다.
성한 사람들도 그 복잡한 환자들 속에 묻히면 같은 환자가 될 것만 같다.
응급실에 있는 시간들은 3일이었지만 의사가 오는 시간을 꼬박기다리다 화장실도 갈 수 없다. 불길한 생각에 휩싸인다..
나중에 인턴 의사가 "이형성 증후군"이라는 생소한 병명을 이야기하긴 했다..
나중에 집에서 인터넷을 검색한 결과, 골수 이형성 증후군 이라는 병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치병...
백혈병의 전단계로 운이 나쁘면 급성 백혈병으로 변해 버리는 무서운 난치병이다..
아직까지도 세계에서 이 병에 대한 원인을 정확하게 찾비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만약에 이 병이라면 약으로 치료를 하는지 아니면 계속 수혈로 연명을 할지....
내가 앞으로 생명을 연장해가는 나날들이 순탄치만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머리 생각들로 가득하다.
추측하지 말자고 하면서도 생각을 하게 된다.
응급실 앞에서 하루에도 수 없이 들어오고 나가는 엠브런스를 보면서 저 많은 환자들 중에 몇 명이 죽어나갈까?
병원 창문으로 비치는 반짝반짝 엠블런스 차 불 빛에 한참동안 멍하니 난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내게도 죽음이라는 것이 이렇게 빨리 찾아오는 걸까?

병명확진:만성골수단핵구성백혈병
2011년 8월 22일

'만성골수단핵구성백혈병(CMML)' 이라는 병명을 듣고 한참을 넋을 놓고 앉아 병원 밖만 바라보았다. 같이 간 아들을 보아서라도 자꾸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내 마음 속은 울고 있었다.
백혈병 중에서도 한 명 나올까 말까한 희귀병이라는 병이라고 한다.
그래서 치료 방법은 1차 '다코젠'이라는 항암 주사를 5일 맞는다.
이것은 치료보다는 병을 느리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2차 중요한 치료는 골수이식이 최선의 치료라고 한다.
그것도 형제들로 부터 골수가 맞는 사람(공여자)이 있는지 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형제에게도 없을 경우에는 타인에게 받는 방법, 아니면 최후에는 자식에게서...

형제에게서 맞는 공여자가 있다면 공여자가 2박3일 입원을 해서 골수를 받는다.
이렇듯 치료방법도 까다롭고 비용도...

환자 본인은 1개월 넘게 항암약과 함께 골수를 공여 받고 나서도 또 힘겨운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그걸로 끝나느 것이 아니라 부작용과 함께 일어나는 여러가지 다른 고통과 싸워야 한다는 것.

왜? 내게 또 이런 시련을 주는지?
참 박복한 인생이다.
그 와중에 오렌지가 필이 통했나?
술 먹고 전화해서 한다는 말들과 목소리...
옛날 생각이 나서 듣는 순간 혈압이 올라갔다.
고함을 치고 전화기를 끊어 버렸다.
인간말종. 퉤퉤.
전화를 안 받을 걸하면서 후회가 된다.
에이 괜히 술 먹은 것 알면서도 받아가지고....

친정 아버지께 전화하고 나니 형제들도 이제 내 병에 대해 다 알게 되었다.
잠이 쉬~ 오지 않는다.
'행복이 무엇인가'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건강이 행복이다'라고 생각이 들었다. 박복한 년... 남편 복 없는 년이 건간이라도 하지.

앞으로 내가 이 큰 과제를 풀면서 나가려면 굳건한 마음을 먹고 이겨내야 할 것이다.

암환자라는 것
2011년 8월 23일

오늘은 오후 2시가 넘어서 병원을 가기로 했는데
전날 처방 받은 항진제 사질 못해서 미리 집을 나섰다.
사람은 갑자기 찾아온 큰 일에 대해선 할 말이 없어진다.
내가 암 환자로 판정이 된 것에 실감을 하지 못한다.
'내게 왜?'
현실을 실감 못하고 있다.
전화로 위로의 말이라고 '괜찮을거야'라고들 한다.
하지만 내겐 그런 말은 형식적인 일들이기에 대답만 '그래요'라고 한다.
약을 사러 가면서도 약국에서도 내가 이런 약들을 사러 갈 줄이야...라며 모든 것에 힘이 빠진다..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날들은 병마와 싸우면서 살아가야 하는 시간들이라니...
병원에 들어 가서 주사 맞고 돌아오면서 조금씩 몸의 컨디션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집에와서 고열로 밤새도록 아팠다.
결혼을 앞둔 딸래미, 사위와 긴 얘기도 나누지 못했다.

걱정이 많아진다.
내일도 또 주사 맞으로 가야한다.
이제 시작이다.
마음을 다 잡자!

내일의 희망을 위해서...
2011년 8월 24일

오늘도 오전엔 모든 것에 손을 놓고 있다.
이러면 안되지 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든다.
냉장고 안에 모든 반찬 냄새들이 내 속을 뒤집어 놓는다.
이럴수록 내 마음 내 속을 내가 다스리자라고 생각하고 참아가며 반찬 정리를 했다. 요즘은 주방살림을 놓은 채 반찬도 하지 않으니 아이들의 식사가 부실하다.
지금 시작인데 여기서 부터 상실에 빠진다면 커다란 치료와 내게 닥쳐 올 많은 고통과 통증들을 어떻게 이겨낸단 말인가. 힘을 다시 내자 손에 힘이 없어서 글씨도 제대로 안 써진다.
아직도 실감할 수 없는 것들에 반항이나 하듯 힘을 내어보지만 현실은 다르다.
오늘 다코젠 주사를 맞고 와서 밤새도록 고열과 싸우면서 새벽에나 잠이 들었다.
식사를 맛있게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도 내일의 희망을 위해서...

암환자 교육있는 날
2011년 8월 25일

목요일, 오늘은 암환자들의 교육이 있는 날.

12시 10분에 집을 나섰다.
수납을 하고 나서 교육장으로 갔다.
그곳엔 많은 암환우들이 보인다. 마음이 우울해진다.
교육 들어가기전 여러가지 책자들도 보고 며느리와 통화도 하고 딸래미와 통화도 했다..
그때까지도 아무일 없이 기다리고 있다가 1시 10분에 교육실에 들어가서 자리잡고 앉았다..
환자들을 위한 교육 관련 설문지와 책자도 받고 교육을 듣기 시작했다..
책자에 메모를 해 가면서 교육을 듣고 있는데 글씨들을 보기가 힘들어져 갔다..
머리가 아프고 식은 땀이 나면서 시야가 혼미해 온다.
몇일 전 쓰러졌을 때 그 증상의 전조현상!
급히 간호사에게 호소를 했다.
채혈내과에 나오자 의자에 앉은 상태에서 시야는 점점 어두워진다.
정신줄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응급실로 가는 동안도 정신은 있었다.
응급실에서는 위급환자라고 팔뚝을 여기저기 찔러댄고 사진(엑스레이)도 찍는다. 링겔의 수액이 빠른 속도로 내 몸속으로 흘러 들어 온다.
빠르게 들어오는 링겔, 숨이 차오른다.
심장내과 의사가 와서 엉뚱한 소리를 해댄다.
저번에 왔을 때 듣지 못했던 말을 한다.
혈압약을 먹지 말라고 했다는 둥.
검사가 있었는 데 안했다는 둥.

응급실. 어깨 고통과 함께 그 많은 암 환자들 속에서 잠도 잘 수가 없다.
그 고통의 소리들.
저 많은 사람들이 살겠다고 지방에서 올라왔겠지.
그 옆에서 완쾌되길 바라는 마음의 보호자들이 뜬 눈으로 환자의 통증이 가라앉기를 바라고 있다..
나도 남편 대신 사랑하는 나의 아들이 밤새도록 뜬 눈으로 엄마를 지킨다..
불쌍한 것. 지질이도 복도 없는 것들. 부모 복도 없는 것들.
이제 짝 만나 행복하게 살려고 하니 또 큰 시련을 안겨준다.
못 살 병이라면 적당히 하고 저 세상으로 가주면 아이들에게 주는 고통은 덜 할텐데....
지금은 포기할 수도 없다!
또 지금 부터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환경을 생각하면 자신감이 없어진다.
잇몸질환이 너무 심하고 메스꺼운 속 때문에 식사도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미주신경계'라고 하여 자꾸 쓰러져 버린다..
마음대로 자윱롭게 바깥을 나가기도 두렵다.
길을 가다가 쓰러져버릴까봐 겁난다.
이런 상황에서 전에 먹던 무릎관절약을 먹지 못했는데 그것 때문인지 오른쪽 무릎이 아프다. 무력감과 기력이 너무 없다.

PS. 이틀날 퇴원하려고 심장내과 의사 얼굴 좀 다시 보려고 했는데 결국 보지 못했다.
엉뚱한 소리해 댄 그 뻔뻔한 얼굴 한 번 보고 올려고 했는데...

심장 검사실
2011년 9월 1일

힘 없는 몸을 이끌고 병원을 갔다.
집을 나설 때 부터 기력이 없다.
먹은 것이 없으니 더한 것 같다.
이 병으로 두 번 쓰러지고 나서는 밖에 나갈 때 긴장하게 된다.
몸 동작들을 늦추고 사리고 소파에 앉았다 누웠다 하면서 심장 검사실로 올라갔다.
살다보니 별 검사를 다 한다.
미주신경계가 어떻게 발작을 하는 지 알기 위해서 하는 것 같았다.
침대에 사람을 묶어 놓고 세워서 40분 동안 세워 변화를 보는 데 20분도 채 되지 않아 발이 저리고 아픈 무릎이 저려 온다. 20분 넘어서는 식은 땀이 나면서 기절 전조현상이 서서히 나타난다.
열이 얼굴을 솟구치듯 나고 식은 땀이 흐르면서 힘이 쫘악 빠진다.
침대를 서서히 가로로 눕힌다.
힘든 시간이다. 그 순간 그러고 나면 회복이 금방되지 않는다.
안정을 취하고 누워 있어야 회복이 된다.
그 순간은 혈압이 50~60으로 떨어져 버리니깐 그대로 간다면 정신을 잃기도 한다..
심하면 뇌손상도...
내게는 왜? 이런 병이 생기면 병도 한개도 아니고 겹쳐서 오는지?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줬는지...
이제 행복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니까 하느님도 무심하지...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사람들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왜 나만 갖고 그래.

내일은 또 혈액내과에 진료가 있다.
수시로 채혈을 하는데 검사도 수시로 이루어진다.
내일은 내 핏속에 있는 나쁜애들이 좀 줄어 들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선생님께 식사라도 잘 할 수 있도록 얘기를 해야겠다.
이전에 응급실 있을 때도 얘기 했는데 들었는지 말았는지 말이 없다.
그 많은 환자들 속에서 어설프게 얘기하면 내 말이 들리지도 않겠지
많이 우는 애기에게 젖을 주듯이 수다를 떨어야 들어줄까 말까다.
응급실에서 암 환자가 고통이 심하니깐 울부짖는다.
살려달라고 하지만 진통제에 독한 약들을 투여했는데도 듣지 않으니 인턴들도 속수무책이다.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내게도 저런 상황이 온다면 고통 받느니 죽는 것이 나을 거라고 생각하겠지?
아직까지 실감이 나질 않지만...
현재 내가 힘든 것은 잇몸질환, 변비, 먹지 못하는 것들, 기력이 없어 쓰러지는 것, 이런 것들이 힘들다고. 내 나름 힘들어 한다.
앞으로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아픔이 놓여 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내 스스로 마음 다져본다. 내가 그래도 살아 나려면 강한 정신을 키워야 한다는 것을...

반복된 일상들
2011년 9월 2일

오늘은 혈액내과에 내원했다.
아침에 변비 때문에 씨름하다가 해결하지 못하고 왔다.
오늘도 여전히 기력이 없다.
또 몸을 사린다.
식은 땀이 자주 난다. 늘 메스꺼움 때문에 식사를 못하고 식사량이 일정치 않아 변비가 심하게 왔다. 내일 홀터 검사만 끝나고 나면 강력한 변비약을 먹어서 고놈의 딱딱해진 변을 없애버리리라 생각했다. 의사 선생생님을 만나 앞으로의 치료에 대해 상담하고 다코젠 날짜조정도 해야된다. 딸 아이 결혼식, 명절 때 형제들에게 골수 검사에 관한 것도 이야기해야 되서 날짜조정이 필요하다. 보험에 제출해야 할 서류, 진단서, 골수 검사서 등과 식사에 대한 약, 항균제를 처방받고 힘들게 돌아왔다. 지친 몸 탓인지 정신없이 낮잠을 잤다.
살기 위해 무엇을 먹어야 속에서 잘 받을 까.
매일매일 이런 생각들이 내게는 어느덧 하루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오늘도 이렇게 살기 위해 생각하고 있다.

홀터검사 하는 날
2011년 9월 3일

오늘은 토요일이라서 아들, 며느리와 같이 병원에 갔다..
홀터검사, 가슴에다 몸에다 여기저기 센서를 붙이고 기록되는 칩이 달려 있다..
하루 꼬박 붙히고 이튿날 땐다고 한다..
증상이 어지럽거나 여러가지 증상이 나타나면 기록을 해서 오란다..
병원에 들렸다가 너무 일러서 병원 커피숍에서 아이들과 아이기를 나누다가 잠실백화점에 와서 쇼핑을 했다. 며늘아이가 명절이라고 옷과 신발, 가방을 사준다..
그 동안 아프면서 살이 많이 빠졌다..
난생 처음 77 사이즈를 입었다..
건강하면서 이렇게 날씬하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다..
며늘아이에 생각에 맞춰서 사게 했다. 상의가 조금 작은 것 같은데... 생각하고 있었다. 홀터를 차고 옷을 입어 보려니깐 불편한 점이 있었다..
77 사이즈 상의는 좀 넉넉하면 좋겠는데....
백화점 안에서 식사를 하고 집에 와서 옷을 보니 하자가 있어 바꾸러 갔다. .
그 치수가 없단다. .
난 88 사이즈가 계속 생각났다..
티 조유가 아니라 그래도 가디건이니깐 88로 얘기를 해야겠다..
오늘은 좀 무리 한 것 같다..
힘들다.

오후에는 홀터 기계 때문일까?.
열이 나고 머리가 아프다.

미주신경실신
2011년 9월 6일

오늘 검사결과를 보러 아들과 병원에 갔다.
이곳 저곳 상담이 끝나고 나니 예약한 시간를 넘겨 버렸다.
1시간을 훌쩍 넘어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의사를 만나보니 '미주신경실신'이라는 병명이 확실하다고 한다.
물론 약은 있지만 특별한 치료는 없고 잘 먹고 전조현상이 올 때는 안정을 취하라고 한다. 모든 기능이 떨어지고 체중도 줄고 이런 상황이 생기면서 일어나는 병이라고 한다.
젊은 사람들도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서 체중을 갑자기 줄이고 하다보면 체력이 떨어지면서 이런 미주신경실신이라는 병이 많이 온다고 한다. 그저 잘 먹고 길 가다 증상이 오면 길에서는 누울 수 없으니 쪼그리고 앉아 안정을 취하는 것도 실신에 대한 예방 방법이라고 한다.
그 소리를 듣고 아들과 병원을 나오면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왜 그런 병이 생기는지 확실히 병원에서도 모르는 것 같다.
별혈병과 관계 없다고는 하지만 백혈병으로 인해 모든 체력이 떨어진 상태이니깐 그런 병도 오는 것인가. 미식거리는 약과 음식 맛이 당기는 촉진제를 오늘 처음 복용하고 나서 아픈 이후로는 처음으로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오랜만의 포만감에 행복했었다.
음식도 시골에 친정 아버지께서 보내주신 온갖 나물과 토종된장에 더덕 무침에 진수성찬 못지 않았다. 나물과 비벼서 맛나게 먹었다. 이대로 입맛이 돌아온다면 걱정이 없을텐데...
부지런히 먹고 자꾸 챙겨 먹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건강해진 몸으로 골수이식이라는 커다란 수술을 무사히 할 것 같다.
(내게 맞는 공여자가 나타나야 할 텐데)

여기저기에도 아픈 증상이 나타나며 그 동안은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식사만 앞으로 잘 한다면 용기가 날텐데..

숨이 차 올라...
2011년 9월 9일

오늘은 혈액내과에 내원했다.
아무런 생각없이 스포라녹스(진균제)를 캡슐로 바꾸고 약이나 처방 받고 와야지 하면서 진료를 받았다. (그 전엔 스포라녹스액이었는데 먹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사가 하는 말이 백혈구 수치가 너무 많이 올라갔다는 것이다.
못했던 식사도 요즘은 잘하고 있는데 얘네들도 내가 식사를 잘하니 같이 기운이 난 모양이다. 또 마음이 그랬다.
이런 마음들이 앞으로 얼마나 반복이 되면서 지낼까?
오늘 다코젠(저항암치료)을 맞아야 한다고 한다.
추석 명절도 다가오고 몸도 기운이 좀 나고 해서 친정에 갔다올 생각이었는데...
의사말이 안된단다.
돈을 지불하고 5층 암환자 센터 주사실로 올라가서 다코젠을 맞고 왔다.
다코젠 맞는 첫 날은 그래도 식사도 하고 하니깐 피곤하긴 해도 참을만은 하다.
아이들과 모처럼 나들이에 들떴는데 모든것이 나로 인해 무산되어 버렸다.
그래도 주사 맞으면서 다른 부작용이 없으면 저희들끼리라도 내려가 형제들과 충분한 얘기를 나누고 왔으면 한다. 내가 가지 못해도 그것이 도리가 아닌가 생각한다.
나의 긴 여정이 이제 시작되었는데 아직은 서두르지 말자.
긍적적으로...

백혈구 수치가 많이 올라거서 그런지 걸을 때 숨이 차오르고
몸 여기저기 멍이 들어버린다.
잇몸은 낫지 않고 그대로이고...

최상의 조건을 만들려면 이런 것들이 원래대로 돌아와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앞으로 얼마나 힘들게 할 것인가.
겁도 난다... 솔직히.

이런저런 고민들...
2011년 9월 10일

오늘은 아이들과 같이 병원에 가게 되었다.
너무 미리와서 많이 기다렸다.
수치가 많이 올라갔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마음은 또 축 쳐져버린다.
주사를 맞고 낮엔 괜찮았다.
하지만 저녁에 9시, 10시, 11시 사이에 고열이 38.9도 오르고 귀에서는 방망이로 치는 듯한 소리가 난다. 꽁꽁 앓고 물도 많이 섭취하고...
새벽에는 조금씩 열이 내리면서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 약도 은근히 독한 약인가 보다.
몸 전신은 멍이 들어서 속에서 다 터져버린다.
울긋불긋. 보기가 흉하다.
골수문제도 있고 형제들을 만나 상의도 할 겸.
내 목숨 살려달라고 사정하러 가야한다.
명절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친정 아버지 생신도 지나갔지만 큰 딸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오늘도 10시 3분에 주사를 맞고 아이들과 친정으로 직행할 것이다.
갔다가 내일 새벽에 다시 올라와야 한다.
난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 이것은 시작을 뿐...
골수이식에 대해서 생각했다. 아직 받아 보지 않아 느끼지 못하겠지만 더한 고통이 따를 것이다. 내 자신과의 싸움은 끝이 없겠지...

영월 가족회의
2011년 9월 10일

오늘도 다코젠 맞는 날이다.
1차 항암치료제. 이것도 맞으면 좀 사람을 힘들게 한다.
오늘은 주사를 맞고 골수문제 때문에 친정에 가기로 했다.
형제들과 명절이라 모여서 의논하고 이 병에 대해서 설명도 드리기로 했다. 여동생들은 확답을 듣고 일단 1차 예약하기로 했다.
남동생은 얘기만 하면 감정부터 북받친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도 저희들 생각만 하는지...
저희 잘 못은 모르고 여태까지 불목하고 살아왔지만...
물론 나도 가끔 잘 못한 것도 있다고 하지만 내 아들이...
너의 조카가 엄마 좀 살려달라 설명하러 갔는데...
내 목숨과 무슨 협상도 아니고 자기 마누라한테 전화를 해.
어림도 없고 나쁜 놈. 앞으로 얼마나 잘 되나 내가 살아있는 동안 두 눈 뜨고 똑바로 지켜보리라. 너와는 물 건너 갔다고 생각한다. 내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두 번 다시 보지 않으리. 여동생 둘 먼저 검사하고 나서 맞는 사람이 없다면 타인에게 해보는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누나가 죽는다고 골수 좀 나누어 쓰자고 하는데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지... 인간아!
내가 너를 두번 다시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겠다.
에이 나쁜 놈!
넌 그렇게 살아라!

내게 살라는 운이 있다면 살 것이고,
죽으라면 운이 없는 것이겠지
마음 속에 죽는 날까지 너가 행동한 그 모든 것들을 품고 있으리라.
나에게도 아닌 조카와 조카 며느리에게도 그렇게 했다는 것이 너무나 괘씸하다.
죽는 날까지 너 골수 안 줘도 걱정 안한다.

이것이 나의 죄라면 죽음으로 달게 받을 것이고 운이 좋아서 살아난다면 남은 여생 행복하게 보낼 것이다. 지금 이 시간부터는 넌 내 동생도 아니다라고 단정해 버릴 것이다.
내 마음에서 지워 버릴 것이다.
집안 일 내 집안일 이 모든 것들은 다 이제 너는 상관 없는 것으로 여길 것이다. 이제 두 사람에게만 기대해 본다.
너무 가슴이 아프다.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목숨을 걸 만큼 저와 협상을 해야 하는지. 두고 두고 이 악물고 내 병에 대한 치료에만 전념할 것이다.
주위 모든 것들을 잊어 버리고 내 몸만 돌 볼 것이다.
그것도 내 운명이고 복인 것을 타인에게 최후하다 없다면 내 운명으로...
짧다면 짧은 내 생, 운명으로 받아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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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 맞고 영월 갔다가 하루 밤을 자고 서울로 돌아왔다.
오전에 다코젠 주사를 맞고 아들, 며느리가 바람 쐬워준다고 남한산성에 갔다가 차가 밀려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멀미가 난다. 주사 기운도 있고 너무 힘들다.
잠깐 차를 세우고 나서 토하기 시작했다.
아직 시작이야. 요즈음 난 늘 아직 시작이야라고 생각하고 내 마음을 스스로 다 잡아 본다.
앞으로 닥쳐올 그 많은 고통들을 내가 참아 낼지가 의문이지만 조금 아픈것은 늘 아무것도 아니라고 내 스스로를 마음을 다진다.

행복은 살아 있다는 것을 우리같은 환자에게 쓰는 것인가.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우리에게는 살아 있는 것에 대해 행복해야 하고 감사해야 되는가. 남한산성, 내겐 지금 한낱 풀 한포기도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다.
그네들은 늘 피고 지고 할테니깐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한 번 가면 돌아올 수 없는 것.
가을이라 코스모스가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
꽃 한송이 어르만져보고 싶은데 그것도 소중해서 눈으로만 쳐다보고 지나쳤다.
꽃을 꺾는 다는 것은 그 꽃을 죽이는 것과 같다.
꺽어도 어차피 땅에 버릴 것이라면 왜 꺾어서 꽃을 죽일까.

햇볕 좋은 날씨. 며느리와 (아들은 빼고) 좋은 공기 속에서 산책도 하고 많은 이야기 나누기도 했다..
아들, 며느리 나 셋이 맛있는 점심도 먹었다.
메뉴는 도토리 무침, 감자전, 골뱅이 보쌈과 된장을 맛있게 먹었더니 뒤집혔던 속이 가라 앉았다.

생각을 말자!
나쁜 생각은 내게 나쁘게 돌아오겠지.
좋은 생각만 하자!
건강을 찾는 비결은 긍정적으로...

명절의 끝자락
2011년 9월 13일

오늘은 명절 끝 마지막 날.
오늘까지 아들, 며느리와 병원을 같이 가게 되었다.
오늘도 다코젠 주사를 맞았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에 그냥 집에 들어가기 아쉬워서
우리동네 근처에 있는 칼국수 맛집을 찾았다.
점심은 맛있는 바지락 칼국수로 먹고 난 뒤 부근 공원에서 시원한 바람과 함께 즐거운 휴식시간을 보냈다..
이제 아이들은 내일부터 정상적인 회사 출근이다.
길지 않은 명절연휴 나를 위해 다 써버린 아들, 며느리에게 또 고맙다.

딸아이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결혼식전에 신혼여행을 먼저 떠났다.
그 아이들이 오늘이면 신혼여행을 끝내고 돌아온다.
이제 다음 달 마지막주 결혼식만 하면 된다.
저녁에 우리집으로 바로 올지 모르겠지만 맛있는 반참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신혼여행 동안 있었던 재미있었던 여러가지 이야기도 듣고 우리 식수 다 모여 북적일 것을 생각하니 난 오랜만에 또 다시 행복감에 젖어드는 것 같다.

다코젠 주사 또 몇일 쉬고 다시 시작하겠지.
열심히 맞고 열심히 먹고 골수가 맞는 사람이 있을 때까지 해야지...

심성고은 여동생
2011년 9월 14일

오늘은 다코젠 주사를 맞고 겨우 쉬는 날.
주사약 기운 때문인지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마음만 믿고 자전거에 몸을 싣고 외출을 했다.
자전거 페달을 밟을 수가 없다.
숨이 차오른다.
힘이 빠진다.
목줄기에 식은 땀이 흘러내리고 정신을 차리기 힘들다.

급한 것은 아니지만 나온 김에 겨울이불하나 사서 자전 뒤에 싣고
겨우겨우 중간중간 쉬어쉬어 집 근처 동네까지 오게 되었다.
동네 공원에서 주저 앉아 쉬고 있지만 집에 갈 수가 없다.
10분도 채 되지 않는 거리가 용기가 나질 않는다.
몸은 점점 변화의 징후가 나타난다.
조바심과 두려움이 앞선다.
미주신경계 실신이라는 병과 같이 있다보니 너무 힘들다.
오래 서 있는 것도 힘들고 점점 병의 상태가 악화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만 생긴다..
팔다리에는 멍이 끊이질 않고 요즘은 피부가 사방 가렵다.
입술은 핏기도 없고 소화도 안되고...

오늘은 셋째 여동생이 병원에 예약했다고 한다.
심성고은 동생...
언니를 위해서 기꺼이 골수를 주겠다고...
검사는 해봐야 알겠지만...
막내 여동생과 함께 두 동생게게 희망을 걸어본다.
만약 둘다 골수가 맞지 않는다면 언제까지 마음 태우면서 타인에게서 맞는 골수를 찾아야 한다..
두 동생한테서 맞는 골수가 있으면 좋을텐데...

잠시 어리석은 생각에 잠겼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죽음에 어느 누구도 두려워 한다..
그러기에 내가 죽을까? 얼마나 살수 있을까?.
고민에 빠진다. 잠시 내게 살 수 잇는 행운이 있을까?.
점이라도 한 번 볼까도 생각했었다..
어리석은 생각에 잠시 혼자 피식 웃었다..
마음을 곱게 쓰자..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각을 버리고 마음을 바로쓰자고 다시금 생각했다..
어리석은 자들에게 상대가 되어 똑같이 상대해 버린다면 같은 사람이 될 것 아닌가!.
내 마음을 비우고 덕을 쌓아보자..
자신이 부덕한 생각은 하지 않고 늘 남 탓하면서 살아온 자들이 무슨 행복을 누리겠는가!.
앞으로의 내 자신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운명에다 맡기는 길 밖에 없는 것 같다..
인력으로 안되는 것이 사람의 목숨인 것을....
이렇게 있다가도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시한부 인생 같은 내 사람이 서글프고 힘들지만....
희망이라는 말을 마음속에 생기면서 꿋꿋하게 버텨야지..
내 인생. 아직은 좀 죽기에는 억울한 것 같아..
몇 년만 더...

운을 믿어봐야지...
2011년 9월 15일

오늘도 주사 기운 때문인지 조금도 걸을 수가 없다.
힘이 없고 숨이 차오른다.
걷기도 힘든 상황이다.
주사약 때문이라면 덜 걱정인데...
증세가 그렇다면 여러가지 불편함이 많을 것 같다.
동네마트에도 가기가 힘든 상황이다.
2~3개월 사이에 몸이 너무 안 좋아졌다.
내일은 여동생이 골수검사를 하러 온다.
너무 고맙게도 바쁜사람인데 열열 제쳐놓고 온단다.
마음 속으로 기도해 본다.
동생 하나로 골수가 맞으면 좋겠다.
그러면 난 재수가, 운이 참 좋은 사람인데...
검사를 해 봐야 하는 것이기에 속단 할 수도 없다.

맞는 공여자가 없으면 그 동안 다코젠이라도 계속 맞아서 백혈구 수치를 낮게 해 놓아야 한다..
형제 중에도 맞지 않는다면 타인에게서 맞는 사람을 찾아 받아야 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
운을 믿어봐야지...

복권 맞은 것 처럼
2011년 9월 16일

오늘은 혈액내과 내원하는 날.
여동생이 골수검사 하기로 한 날이기도 하다.
동생아 고맙다.

저번주 다코젠을 맞고 나서 수치는 조금 내려 갔는데 헤모글로빈은 많이 떨어졌다.
빈혈과 숨이 많이 차고 귀에서 소리가 나는 것에 대해 의사한테 이야기 하지 못했다. 수혈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3시간정도 걸렸다.
아들은 동생 골수검사에 드는 비용을 계산하고 점심먹고 볼일 보러 갔다.
수혈을 받는 동안 동생이 내내 몇 시간 자리를 지켜주었다.
차비 좀 주려고 하니 막무가내로 도망간다.
수혈을 맞아서인지 어제보다는 조금 정신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숨이 차고 기운이 없고 식은 땀이 나고 조금도 밖으로 나가기가 불편했었다.

오늘은 친구들이 온단다.
집안 청소나 깨끗하게 해야겠다.
늘 청결이 최우선이니깐 청소나 해야지.
그리고 불안한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동생의 것과 꼭 맞으면 좋겠는데...
맞다면 그런 행운도 없을 것이다.
복권 맞은 것보다 더 좋을텐데....

부대찌게와 소화불량
2011년 9월 18일

지난 금요일 수혈 받고 와서 그런지 어제, 오늘은 컨디션이 그런대로 괜찮았다.
오전에 며느리와 자전거도 타고 자전거 타이어에 바람도 넣고 여유롭게 방이시장도 갔다. 며느리한테 잠옷도 얻어 입고 속옷도 얻어 입고...
올림픽 공원가서 벤치에서 전형적인 가을 정취를 느끼고 시원한 마음 많이 마셨다.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부대찌게가 먹고 싶었다.
친구들이 병문안 오면서 맛있는 것 사먹으라고 오만원을 주고 갔다.
그걸로 쇠고기 사러 식육점에 들렸더니 주인이 김치찌게를 끓이고 있었다.
아들, 며느리, 나 셋이서 결국 우리 동네 부대찌게 집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고 왔다.

그런데 저녁에 소화가 안된다.
명치 끝이 너무 아프다.
점심 부대찌게 너무 맛있게 먹었다 싶다.
까스할명수 2개나 먹었지만 소용이 없다.

저녁에 며느리와 석촌호수를 조금 돌았다.
조금 나아지긴했는데 아직도 좀 그렇다.
식사를 조금 한다고 무리를 했나보다.
앞으로 조심해야겠다.

김치하던 날
2011년 9월 20일

수혈 받고 몇일 째 턴디션이 조금 괜찮아서 김치를 시작했다.
하지만 마음 뿐이었다. 숨이 목까지 차오른다.
무리하면 안된다는 것을 마음만 믿고 했다.
중간중간 누웠다.

실골 사돈집에서 여러가지 과일과 야채들을 보내주셨다.
그러다 보니 거실은 난장판이 되었다.
오늘 못 치우면 내일 치우면 되지 느긋하게 하기로 마음 먹고 했다.

화요일은 딸래미가 쉬는 날이다.
딸래미가 근처 치과 진료를 받고 있기 때문에 보고 싶기도 하고 해서 잠깐 들려서 시골에서 온 과일도 가지고 가라고 오라고 했더니 변명이 많다.
내 마음도 모르고 시집가면 고만인 건데...
짜증을 내고 전화를 끓어 버렸다.
그러고 나니 저도 마음이 걸렸는지 둘이 같이 왔다.
김치하는 것도 도와주고 고기도 사와서 금방한 김치와 시골에서 온 채소를 곁들여 먹으니 맛있다. 여럿이 먹어니 더욱 꿀맛 같은 저녁식사가 되었다.
밥량을 조절해서 먹어야 하는데 요즘은 밥이 당긴다. 저녁에도 먹고 조금 더 먹었다.

유전자 검사... 동생이 채혈 해 놓고 간 것이 일부 결과가 나왔다고 병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머지 검사를 위해 비용이 발생하여 계산을 해야 한다고 한다.
23일 금요일 예약이 있어 그날 가서 계산하고 나머지 결과에 대해 들을 것이다.
많이 궁금하지만 한편으로 불안 한 것이 더 많다.

75%가 맞다고 해도 맞지 않는 경우도 맞다고 한다.
너무 기대하기 보다 ㅏ분히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식생활과 건강
2011년 9월 22일

조용한 새벽 쓰레기차만이 새벽 정적을 깨트린다.
전날 좀 식사를 많이 먹어서 인지 새벽에 배가 아프다.
요즘은 자다가도 소변을 너무 자주 보게 된다.
귀에서는 여전히 방아 찧는 소리가 들린다.
이번에 병원에 가면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려야 할 것 같다.
화장실에서 몇 분 씨름하고 나오니 뱃속이 후련해졌다.
자다깨다 자다깨다 요즘 잠이 더 안 온다.
골수... 유전자... 동생의 골수가 현재 75%...
나머지가 문제인데 그 생각만 하면 늘 조바심이 난다.
100% 다 맞다면 아들 고시합격한 것 만큼 기쁠텐데...
시간은 왜 이리 안 가는거야.
그러다 보면 뜬 눈으로 밤을 세우곤 한다.
요즘은 식사는 그냥그냥 잘하니깐 그 걱정은 없는데 조바심 때문에 애간장이 녹는다.
골수가 맞다면 모든 걱정이 없어질 것 같다.
한 사람만 힘들게 하면 되니깐 말이다.
그러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마음에 여유를 부리고 가을 정취와 코스모스...
가을을 제대로 느끼고 갈 것이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까 딸아이 결혼식도 여유롭고 즐겁게 해줄텐데...
휴...
모든 세상이 더 아름답고 더 소중하게 보인다.
건강을 잃고 보니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인다.
내 자신에게 너무 소홀하게 한 것 같아서 요즘은 내 자신에게 많은 사랑과 행복을 듬뿍 주고 싶다 첫째는 먹는 것, 식생활.
식생활 이것이 생각보다 잘 안된다. 영양섭취 골고루 먹는다는 것.
규칙적으로 짜여져서 한다는 것이 잘 안된다.
이런 균형 있는 생활들이 건강을 지킨다는 데 쉽지가 않다.
골고루 먹는다는 것. 내 스스로 찾아서 먹어야 하니깐 무엇이든 익혀야 하니깐...
조심스럽다.
골고루 먹으려고 노력은 해봐야겟지.
나중에 골수이식이 힘들다고 하는데 건강한 몸을 만들어놔야 힘든 시기를 이겨내겠지.
열심히 해보자.
아자 아자 화이팅!!!

종이 한 장 차이
2011년 9월 23일

오늘은 공여자인 동생의 검사결과가 나오는 날이라서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하지만 나머지 결과는 아직 더 기다려야 한단다.
검사비용 내고 골수검사도 또 한단다.
10월 7일에.

단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마음 조리면서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답답하기만 하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 전화에 불통이 난다.
왠지 전화 오는 것도 받고 싶지가 않다.
수혈 또 수혈만 연속으로 받는다.
이러다 말 것인가 불안한 마음이 든다.
요즘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산다는 것이 종이 한 장 차이 같아서 인생이 무의미 해진다.
내가 지금 이렇게 살기위해 병마와 싸와야 한다는 것에 마음이 서글퍼 온다.
인간도 시련이 없을 때면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인생인가 하다가도 시련이 닥쳤을 때는 인생이 소중하니 어떻니 하니깐 말이다. 참 우습다. 그냥 무슨일이든 내게 닥쳐온 것에 대하여 그냥 순리대로 받아드리는 것이 옳은 지도 모른다.
그래! 재수가 없으니깐 요만큼을 고통 받다가 요만큼만 살다가 가라는 것이 아닌가 하고
순수하게 받아드리는 것도 내가 살아가는 데 힘이 되지 않나 생각한다.
마음을 비우는 것 그것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
앞으로 골수가 맞아서 이식을 한다고 해도 더 많은 고통과 얼음 위를 걸을 내 인생이 보인다. 그렇게 살아서 아이들에게 짐이 되면 얼마나 더 힘든 시간들이 놓여 있을까.
생각하면 마음은 벌써 두렵기 까지 하다.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 상투적인 말들이 내게는 더 내 마음을 비참하게 생각하게 한다. 어쩌보면 나도 56년 그래도 백에서 반년은 살지 않았나.
또 암이라는 것이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에 따라 투병생활하다 끝내는 생을 마감하는 것이 암의 생. 무기한 치료와 무기한 들어가는 비용들.
나도 조금은 암 보험을 탔지만 그걸로는 넉넉하지 않다. 그래서 마음이 더 불안하다.
이것만이라도 써서 완치가 되면 다행인데 생각보다 계속 비용이 든다면 어떻할까?
아이들 힘들게 하는 엄마가 되는 걸까.
나의 친정엄마를 봐서도 그렇다.
7~8년전 암으로 돌아가신 엄마도 그렇게 사실려고 애 쓰다가 가신 울 엄마.
그 남아 아버지 퇴직금으로 병원비 다 날리고 아버지 경우 아파트 작은 것 하나 남기시고 가셨지만 나도 그럴까봐 마음이 불안하다.
아이들에게 짐이 될까 돈으로 힘들게 하지는 않을 까 하고 말이다...

오랜만에 펜을 들다
2011년 10월 11일

오랜만에 펜을 들었다.
시간이 너무 가지 않은 9월달이었다.
동생의 골수검사결과 빨리 나오질 않아서 마음 조렸던 시간들이었다.

다코젠 항암치료
9월 7일부터 다코젠을 맞고 수혈도 했다.
9월 11일까지 맞고 10월 21일 정기진료 가는 날 골수이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듯 싶다. 아니면 담당 간호사에게 물어 봐야 할 것 같다.
마음이 두렵다!

골수가 안 맞을까봐 마음 조렸는데 이제 골수는 맞는데...
막상 골수이식을 생각하니 두렵다.
고통이 많이 따른다고 한다.
남의 것이 내 몸 속에서 거부 반응 없이 잘 안착이 되어 내 것이 되어야 하는데... 병원에서 힘들어 하는 환자들을 보면서 더 두려움을 느낄 때가 많다.
아이들을 봐서라도 마음을 든든하게 먹어야 겠지.
요즘 식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사람은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린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변비. 안그래도 변비가 있는 데 음식을 좀 조심하지 않았다.
소식, 그리고 채소, 식이섬유, 나물종류, 과일.
정신차리고 꼼꼼히 섭취해야 할 것 같다.
또 이런 고통이 없으려면...
그리고 골수이식 무사히 하려면 최상의 몸 상태로 해야하고 운동도 겸하면서 말이다. 정말! 음식조심.

두렵다!
2011년 10월 15일

요즘은 날짜가 갈수록 마음이 더 불안해진다.
머리도 자주 아프다.
요즘 식사량이 많다 싶으면 좀 불편한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알수가 없다. 다른 곳은 모르겠는데 팔에 멍이 부쩍 많이 드는 것 같다. 귀에서 소리가 나는 것도 여전하고...
변비가 있고 나서 항문도 빨리 낫질 않는다.
어제는 좌욕 중에 출혈이 있었다.
속 안이라 그런지 빨리 낫지 않는다.
앞으로도 음식 욕심은 너무 안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골고루 조금씩 먹는 것이 내 몸에 약이 될 것 같다.
항상 긴장 속에 살아야 할 것 같다. 고삐를 늦추지 않는 그런 삶 말이다.

하느님께서 내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무능력자라고 시험을 주신 것 같다.
어려운 시련을 숙제로 하나씩 풀어보라고 말이다.
커다란 관문은 내 몸이 어떻게 이겨낼지...
골수이식, 그것도 커다란 과제이고 무엇보다 첫째는 내 마음도 굳게 먹는 것이고...

두렵다! 사실...

죽음이라는 것도 이번에 더 생각하게 됐고 내가 살려면 긍정적인 마음이어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식사와 운동을 꼭 해야 한다는 것인데
식사는 신경써서 골고루 조끔씩, 운동은 걷기 꾸준히 조금씩 생활화가 되도록 말이다. 그 식사와 운동도 무리하면 안되니깐 적당히 조금씩 늘려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컨디션이 어느날 어떻게 될지는 내 정신과 내 마음에 달려 있다는 생각...

앞으로의 스케줄
2011년 10월 21일

오늘은 좀 수치들이 올라갔을까 하고 병원에 갔다. 하지면 역시나 결과는 늘 갈 때마다 좋지 않다. 또 기분이 다운된다. 이식 할 동안은 늘 그럴 것 같다. 여기서 이식 할 때까지 더 나빠지지 말아야 하는데... 이러다가도 만성인데도 급성으로 넘어갈수도 있다고 했다. 늘 마음이 조마조마 하며 살아 가고 있다.

결혼식 때문에 이번에 일주일 후에 또 병원에 오란다. 병원은 10월 27일 예약이다. 그때도 채혈, 수혈, 혈소판을 다 하는 것인지... 갈 때마다 늘 돈이다.

이식 날짜도 대충 잡혔다. 12월 12일, 둘째 여동생(골수가 맞는 동생)이 토요일, 일요일 끼고 이 날짜에 되려는 지 모르겠다. 전화해서 상의해야 겠다.

11월 한달은 이렇게 수혈과 혈소판, 채혈하면서 지내야 한다. 늘 이렇게 이식하든 안 하든 늘 조심조심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내 사람이 이렇게 살라고 타고난 운명인 것을...

치료할 과제들
2011년 10월 23일

공원 벤치에서 가을 단풍에 도취되어 마냥 앉아 있었다.
다리가 아픈데 걸어서는 다니기 힘들다.
자전거가 나의 유일한 두 다리 역할을 한다.
무릎 관절이 아파도 자전거를 조금씩 타면 참을 만 하다.
자전거 덕분에 재래식 시장, 마트 이런 곳을 부담없이 다니고 잇다.

어제는 눈에 핏줄이 터져서 눈이 말이 아니다.
자고 일어나도 오래 갔다.
이식 전에 치료할 과제들이 많다.
이식 하기전엔 염증 같은 것이 있으면 안된다고 한다.
이빨도 마져 치료해야 하고 목통증도 걱정이 된다.
무릎 관절 통증도 병이 한 두가지가 아니니 원.
제일 급한 것은 치과 치료를 마져해야 할 것 같다.
치과 신경치료는 전에 덜한 상태라서(백혈병 진단을 이빨치료중이던 시점이었다.) 가끔씩 이빨이 솟긴다. 그럴 때는 이빨이 아프다. 염증이 있는 거인지 은근히 걱정도 되고.
어깨, 목통증도 있는데 집에서 찜질이라도 열심히 해야할 것 같다.
내 몸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여기저기 고장 안 난 곳이 없다.
독한 약에 이식 때 내 몸이 잘 이겨내야 할 텐데 걱정이다.

잔병치레
2011년 10월 31일

27일날은 혈소판을 두 개 맞았다.
시간이 갈 수록 몸 상태는 좋아지지는 않고 나빠진다.
긍정적으로 살자 하면서도 문뜩 이러다가 죽어가는 거 아닌 가 한다.
12월 12일날 무균실로 들어간다.
골수이식(조혈모세포이식)을 하기 위해서...

딸래미 결혼식에 가면서 멀미에 컨디션이 최악이었다.
결혼식 무사히 치르고 나니 온 몸이 아프다.
그래도 큰 일을 치르고 나니 마음은 후련하다.

이제 내 몸 하나 잘 챙기고 골수이식 잘 받아야겠다.
물론 늘 긴장하고 살아야 하겠지만...
내게 주어진 몫이니깐...
내가 짊어지고 갈 과제이다.
귀에서 소리가 나는 데 이빈후과에 한 번 가봐야갸 할 것 같고...
치과에서 가서 신경치료 다시 받던거 마무리하고...
염증이 있는지 확인도 좀 해야 할 것 같다.

주마등
2011년 11월 12일

몇일 전만 해도 그 예뻤던 은행 단풍잎들이 길 위에 노랗게 쌓여서 가을정취를 더해 주고 있다. 그 위를 아무런 생각없이 달렸다. 기분이 상쾌해진다.
가을 비가 내리고 난 뒤 어느덧 단풍잎은 퇴색해가고 잎들은 많이 떨어져간다.

병원가는 날 차창가에서 그것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늘 그 풍경이 내 마음과 같았다...
서글픔...

저번 주에는 수혈과 혈소판을 맞았다. 혈소판을 두번째 맞을 때는 너무 가려웠다.
붉은 반점이 생기고 알레르기 약도 먹었지만 부작용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이식 날은 점점 다가온다.
두렵다...
함께 동반될 그 고통을 잘 참아내야 할 텐데...
내가 살기 위해서라면 굳게 마음을 먹어야 겟지...

동생의 조혈모세포...
동생은 나의 생명의 은인이다.
무엇으로 은혜를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
이식수술 무사히 끝나면 무엇이든 보답해야 할텐데...

백혈구, 헤모글로빈, 혈소판 그 남아 약으로 인해 더 좋아 지지도 않하고 고만고만 하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다코젠 항암치료는 이식 때까지 하지 말자고 한다.

이번 주에는 수혈도 혈소판도 맞지 않았다.
11월 17일은 채혈, 심전도 가슴, 코, 귀 사진 촬영이 있고
이빈후과 및 치과 검사들이 있다.
동생도 같은날 11월17일 검사가 있다.
채혈, 엑스레이, 심전도 검사 16일 하루 전날 오라고 했단다. 너무 고맙다.
직장생활도 하는데...
11월 24일은 심장스캔검사, 폐 기능 검사가 있다.

이식수술이 내게는 최선책이기에 이식만이 살 가능성이 있단다.
내가 전생에 죄를 많이 지었나보다.
인생을 살아오면서도 내게는 삶의 지혜도 마음의 행복도 주지 않으신 것 같아서...

하지만 인생은 내려다보라고 했듯이 내게는 지금은 행복과 행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생명부지하라고 말이다.
이식할 수 있는 자격과 또 하나의 행운은 동생의 골수가 한번에 맞았다는 것.
정말로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런것들을 생각해 볼때 나는 정말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식하고 나서의 내 생활들 식생활.
철저히 하고 운도도 열심히 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이 병을 이겨내야겠지.

이 세상,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다.
더욱 건강해 지는 것이 내가 바라는 소망이다.

다리가 너무 아파!
2011년 11월 15일

요즘 다리가 무단히 무릎 뒷쪽이 불이 나더니 걸을 수가 없었다.
몇 일 지나니깐 조금 덜 하긴 한데 마음 놓고 걸을 수 없어서 동네 정형외과를 찾았다.
엑스레이 찍고 초음파 한 결과 뼈에 물이 차 있는데 그것이 피인지 물인지 빼 봐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백혈병 환자다 보니 혈소판도 낮고 함부로 손을 댈 수가 없다고 한다.
아산병원 주치의에게 물어보라고 한다. 물을 빼도 되는지...
그것이 피일 경우 위험하단다. 병원을 가도 시원한 답이 없다.

제한 되는 것들이 많다 보니 다른 곳이 아파도 마음대로 치료도 할 수가 없다.
다리만 안 불편해도 좀 나은데 다리까지 불편하니깐 힘들다.
요 몇일 동안 또 밥을 먹을 수가 없다.
밥만 먹으면 속이 울렁울렁 거려서 너무 힘들다. 그래서 그때 그때 억지로 토해버린다.
토해도 속은 편치 않다.
이것도 이 병에 하나의 증세인지? 뭔가 점점 나빠지는 것 같아 불안하다.
이식을 하면 이전 증세들이 없어질 수 있는지 궁금하다.

오늘 하루 고생했다
2011년 11월 17일

오늘은 아침 일찍 병원엘 갔다.
변비 때문에 뒤가 찜찜한 채로 갔다.
하루라도 상쾌한 날이 없구나.
오전엔 시간에 맞춰 여기저거 감사하로 다녀서 바빴다.
다리는 아프고 힘들었다.

11시가 다 되어 동생(공여자)이 왔다.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와주었다.
동생에게 늘 고맙다.
생명의 은인이니깐 말이다.

돈도 절약되고...
오늘 하루는 많이 힘들었다.
우리 아들도 고생했다...

시어머니 마음
2011년 11월 21일

이식 날짜가 점점 다가 오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무료한 시간이 너무도 힘들다.
아이들 출근하고 나면 종일토록 입에서 냄새가 날 정도로 말 상대도 없다.

'이런 외로움이 어디 있는가'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뜨게질이다.
뜨게를 뜨는 동안은 잡념이 없어진다.

실값이 너무 비싸다.
목도리 하나 뜨는 데 실 다섯 볼, 5만원이다.
며느리에게 떠 주는 시어머니의 마음인데 싼 실로 할 수도 없고.
게다가 오랜만에 떠 보니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틀린 곳도 몇 군데 있다.
마음 같아서는 아들, 딸 사위 다 떠 주고 싶은데...
시간보다는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든다.

나도 용돈 타 쓰는 입장이라 누구보다도 친청 아버지의 마음을 잘 알 것 같다.
친정아버지는 자식이 5남매나 되도 아버지 생활에 신경쓰기가 쉽지가 않다.
그 남아 딸 4명이 그럭저럭 조금씩 매달 용돈 삼아 보내 드리지만 생활비로는 택도 없다.
아이들이 주는 내 용돈에서 조금 나누어서 부쳐 드렸다.
주는 사람은 큰 돈이라지만 받아서 쓰는 사람은 쓸 것이 없다.
10만원이라는 돈.

11월 24일 또 검사가 몇 개 더 있다.
그 날 또 하루종일 검사 여기저기 하랴...
이번에는 수혈, 혈소판은 안 맞는지 모르겠지만....
이식 하는 날가지 열심히 임해야겠지.
고생하는 우리 아들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긍정의 힘으로...